라파치유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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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땅 끝에서 부르는 은혜의 노래 - 라파공동체가 걸어온 길, 그리고 나아갈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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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06 16: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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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 끝에서 부르는 은혜의 노래

                                         - 라파공동체가 걸어온 길, 그리고 나아갈 길

                                                                                                                라파공동체 윤성모 목사

 

1. 들어가며

라파공동체는 기독교 중독치유공동체입니다. 다양한 중독자들이 함께 공동생활을 통해 중독을 치유하는 곳입니다. 주로는 알코올중독자들이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는 도박중독자, 게임중독자들이 있습니다. 입소해 치료받는 형제님들의 우스개 소리 처럼 중독치료종합대학으로 알코올과, 도박과, 게임과가 있습니다. 중독은 현대병입니다. 현대에 와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현대판 천형입니다. 중독에 대해 알려져 있는 흔한 표현은 “중독은 못고쳐!” “중독은 죽어야 낫는 병이야” 등입니다. 그러나 그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치료하기가 몹시 어렵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2,000년 전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수많은 불치병을 고치셨습니다. 오늘날 한센병이라고 이름 붙여진 문둥병자들을 고치셨고, 당시의 의학 수준으로 고칠 수 없었던 수많은 병자들, 혈루병자, 중풍병자, 손마른 자, 열병 걸린 자, 심지어는 날 때부터 걷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며 듣지도 못하던 자들을 고쳐주셨으며, 귀신들린 허다한 사람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기술한 복음서의 절반 이상이 병든 자들을 고쳐주시는 예수님의 이야기로 가득 차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흔히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공생애 사역을 가르치시고(teaching), 고치시며(healing), 선포하신(preaching) 3대 사역으로 표현합니다. 라파공동체의 사역은 정확히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오늘 라파공동체를 통해 이 일을 진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라파공동체는 복음이 전파되고, 말씀이 가르쳐지며, 병든 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침을 받고 나음을 입는 바로 그 곳인 것입니다. 라파공동체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노래는 이무하 형제님의 “땅 끝에서”입니다.

주께서 주신 동산에 땀흘리며, 씨를 뿌리며

내 모든 삶을 드리리 날 사랑하시는 내 주님께

비바람 앞을 가리고 내 육체는 쇠잔해져도

내 모든 삶을 드리리 내 사모하는 내 주님께

땅 끝에서 주님을 맞으리 주께 드릴 열매 가득안고

땅 끝에서 주님을 뵈오리 주께 드릴 노래 가득안고

땅의 모든 끝 찬양하라 주님 오실 길 예비하라

땅의 모든 끝에서 주님을 찬양하라

영광의 주님 곧 오시리라

 이 찬양의 가사 그대로가 라파공동체의 삶과 사역을 대변합니다. 주께서 주신 이 치유의 동산에서 중독으로 생을 망쳐버린 수많은 형제 자매들이 새로운 회복의 삶을 위하여 땀 흘리고, 씨를 뿌리는 곳입니다. 이 곳에서 그들은 주님을 만나기를 고대하면서 치유의 여정을 함께 하고 있고, 마침내 이 땅 끝까지 찾아와 주실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땅 끝이 은혜의 땅이며 축복의 땅인 것을 깨달아 알고 자기 자신을 주님께 내어 드리는 놀라운 전환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2. 걸어온 길

 라파공동체는 주님의 부르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95년, 35살 청년의 때에 주님은 제게 와 주셔서 손 잡아주시고 영의 눈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제 인생에도 유사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날 이후 저는 기독교인이 되었고 제 생명을 그 분께 드렸습니다. 1998년, 뜨거운 마음으로 다녀온 한 달간의 튀니지 단기 사역 현장에서 주님은 제게 사도행전 1:8절의 말씀으로 “땅 끝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먼 북아프리카 튀니지 땅 끝에서 주님이 제게 가라 하신 땅 끝은 제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 곳, 곧 장애우, 노숙인, 알코올중독자 등과 같이 제가 마음에 부담을 가져 결코 섬기리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그들에게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거기가 제게는 주님께서 가라 하시는 땅 끝이 되었습니다.

 1998년 튀니지에서 돌아온 후 저는 곧 바로 장애인단체에 들어가 그들을 섬기다가 1999년 주님께서 모교회에 보내주신 한 명의 알코올/마약중독자를 만나면서 이들을 돕고 섬기며 치료하는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000년 노숙인 알코올중독자를 돕기 위한 사역을 위해 서울에서 대전으로 내려왔고 2001년 영국의 기독교 치료공동체 켄워드 트러스트를 보름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기내에서 라파공동체를 창립하기로 결단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02년 4월 1일 기독교 중독치료공동체인 라파공동체를 창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시기 중독에서 벗어난 회복자들이 저를 목회자로 천거하여 신학을 하게 되었고 침례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중독에서 벗어난 회복자들의 신앙생활을 위해 2004년 사랑과 섬김의 교회를 세웠고 지금까지 담임목회직을 섬겨오고 있습니다.

중독치료사역을 시작한 2000년부터 지금까지 19년간 30-40여명의 형제 자매들이 치유되어 새 삶을 찾았습니다. 그 숫자는 지극히 미미한 숫자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치료의 불가능성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기적과 은혜의 숫자이기도 합니다. 중독이란 병적 현상의 단적인 특징은 중독에 빠진 이들이 그 물질이나 행위를 조절하거나 절제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서 중독물질이나 행위를 조절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치료가 그들로 하여금 똑같은 중독행위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누구나 낫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주님께 자기 자신을 다 내어맡기는 믿음이 있다면 누구든지 치료되어 술과 도박을 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와 같은 결단을 이루어 내는 과정과 그 마음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뿐, 치료는 가능한 것입니다.

 중독은 정신병(정신장애)의 일종이며 이상심리에 해당합니다. 그들은 술 마시지 않을 때 마치 정상인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세밀하게 관찰해보면 정상적 범주를 넘어서 느끼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상한 심리정서행동적 증상을 나타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심리정서행동적 측면에서 정상인이면서 정상인이 아닌 경계 지점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는지,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해야 했는지 모릅니다. 미친 듯이(?) 중독에 대해 공부하던 시절이 있었고, 그렇게 공부한 심리상담이론과 경험을 신학(신앙)과 통합하려는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 결과 백석대학교 기독교상담학과에서 학생들을 5년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라파공동체는 지금까지 크게 세 시대를 거치며 성장해 왔습니다. 2002년-2004년까지의 창립기와 2004년부터 2011년까지의 대전 보문산시대, 그리고 2012년 이후 지금에 이르는 옥천시대로 대별할 수 있습니다. 철거가 예정된 32평 주택을 임대해 시작된 라파공동체 창립기의 이슈는 단연 어떻게 먹고 사느냐 였던 것 같습니다. 예수원의 가르침을 따라 저도 중독의 나라에 파송된 선교사로써 오직 믿음으로만 나아간다는 원칙을 지키려 애쓰고 수고하며 살았습니다.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날마다 채워주시는 은혜를 경험하며 살았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로다”(마 6:33절)의 말씀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이 몇 시인가 시계를 보면 왜 그렇게 6시 33분일 때가 많았었는지......이 시기 또 하나의 이슈는 열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초기 3년간 한 두명의 회복자 외에 도무지 치유의 열매가 없는 것이 얼마나 저를 힘들고 무력하게 했으며 좌절시켰는지 모릅니다. 왜, 이들을 고쳐주지 않으시냐고 하나님 아버지께 대들고 따지고 울부짖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때 주님이 제게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외양간에 송아지가 없어도, 밭에 소출이 없어도, 네 사역에 아무런 열매가 없어도 너는 나로 인해 기뻐하며 즐거워할 수 있겠니?”(합 3:17-18)라고 물으셨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제게 오셔서 열매를 통해 자기의 영광과 성취를 바라는 제 모습을 바로 보게 해 주셨습니다. 힘들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을 때 주님께서는 “네가 나의 열매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저를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죽을 때까지 저를 지탱시켜주는 위로와 격려와 축복과 영광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그 창립의 시기에 연단을 통해 라파공동체의 뿌리가 내려졌습니다.

그 연단의 시기가 지나고 라파공동체 사역은 보문산 시대로 접어듭니다. 32평 철거예정 주택에서 시작된 1기 시대를 지나 500여평의 넓은 대지에 10여명의 공동치유생활이 가능한 곳으로 이전하였습니다. 이 시기의 이슈는 공동체의 성장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뿌리 내린 공동체가 새싹이 움트고 줄기가 뻗으며 꽃이 피고 사역의 열매가 거두어 지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공동체를 세운 선배들이 흔히 이야기 하듯이 공동체가 뿌리를 내리고 사역의 열매가 맺히려면 적어도 10년은 지나야 한다는 말씀은 저의 경험에 비추어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더 오랜 시간 공동체를 일구어온 선배들은 20년은 지나야 한다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중독치유사역 20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 그 말씀들도 지당한 말씀으로 들려옵니다. 이 시기에 라파공동체는 중독치유공동체로서의 위상과 정체성을 공고히 하였고 한국 사회 및 기독교계에 공동체를 통한 중독치유 모델의 독보적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중독치료의 심리상담, 정신분석이론과 실제를 성경과 기독교 신앙의 원리 위에서 통합적으로 구축하는 든든한 토대가 구축된 것도 이 시기였습니다. 그 동안의 사역 경험을 「사랑이 희망이다」(2009년, 생명의 말씀사), 「중독과 치유」(2011년, 대장간) 두 권의 책으로 펴내기도 했습니다.

 2011년 12월 15일 라파공동체는 지금의 옥천부지로 새 공동체 건물을 짓고 이전함으로써 옥천시대를 열어나갑니다. 옥천 시대를 구별 짓는 특징의 하나는 우리 땅, 우리 집이 생겨서 이제 더 이상 남의 집 살이 하며 유리방황하지 않아도 되는 공동체의 확고한 물적 기초가 확보되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집과 땅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며 믿음으로 나아갔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4억여원의 후원을 일으켜 주셔서 1,400평의 땅 위에 15명이 거주하며 치료할 수 있는 140평의 공동체 주거공간을 건축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정주하게 된 것입니다. 다른 큰 변화의 하나는 우리의 생활공간이 대전 도심에서 옥천 깊은 시골로, 대자연의 너른 품으로 옮겨지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옥천시대의 주요 이슈는 “중독치유공동체를 넘어 예수공동체로!”였습니다. 그것은 공동체를 지속적으로 존속시키고자 하는 생존욕구에 대한 대안의 모색이기도 했으며, 주님의 사역을 통해 획득한 집과 재산을 하나님의 것으로 영구히 보존, 계승시키려는 의지의 실천방향이기도 했습니다.

옥천에서 우리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대자연과 농업으로 넘어 갔습니다. 대자연의 품에 안겨 생활하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고 창조신학과 생태신학이 탐구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색은 우리들을 자연농업, 퍼머 컬쳐 등의 생태자연농법으로 인도하였습니다. 그것들은 기존의 친환경유기농법 그 이상의 것들, 곧 하나님의 창조의 의미와 뜻을 전인류와 지구적 차원에서의 현재와 미래에 적용하려는 새로운 통찰이 되었고 우리의 영적 지평을 새로운 차원에서 더 넓혀 주고 깊게 해 주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3기 옥천시대를 맞으며 우리는 중독에서 벗어난 회복자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예수 이름으로 공동체적 삶을 살기 원하는 이들과 함께 8명의 멤버가 모여 “예수의 단순한 삶 수도생활공동체”의 창립을 준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3기 옥천시대의 중독치유사역은 지난 해 출판된 졸고 「버려진 땅에서 우리는 인간이 된다」(2018년, 대장간)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 책은 적어도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의 차원과 성경의 차원에서 중독을 통합적으로, 실천적으로 이해하고 적용하여 온 18년 라파공동체 사역의 결정판이라 말 할 수 있습니다.

 

3. 나아갈 길

3기 옥천시대를 지나며 라파 커뮤니티의 기본구성이 라파공동체-사랑과 섬김의 교회 이원 구조에서 라파공동체-라파마을 생태자연농장-예수의 단순한 삶 농촌수도생활공동체(예수의 단순한 삶 공동체) 3축 구조로 변환되고 있습니다. 중대한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2019년 이후의 시대는 그 이전까지의 시대와 구별되는 새로운 2기의 시대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공동체 삶의 방식과 존재 방식에서 근본적인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우리의 신학과 신앙은 아나뱁티즘입니다. 그것은 새 사상과 새 신조도 아닙니다. 이미 500년전부터 개신교 종교개혁의 한 축을 형성해 왔으며 폭력과 물질주의가 팽배한 현대에 이르러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신학과 신앙인 것입니다. 오랫동안 모색하고 탐구해온 결과 우리는 아나뱁티즘을 우리의 신학과 신앙의 모델로 따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철저한 제자도, 무소유 청빈의 삶, 원수를 사랑하는 평화주의가 우리의 신앙과 삶이 지향할 푯대가 될 것입니다, 아미쉬의 삶의 방식과 태도, 키부츠의 지향 등이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모델이 될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 우리의 신학은 창조신학과 생태신학에 더 큰 무게가 두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 곳이 창조신학과 생태신학을 삶으로 살아내는 실험장이 될 것입니다. 공동체 주변 20,000여평에 이르는 배후지를 생태농법의 실험장으로 삼아 자연생태농장과 정원으로 가꾸는 일이 예수의 단순한 삶 공동체의 비전이 될 것입니다. 예수의 단순한 삶 공동체는 말 그대로 예수님이 걸어가시고 제자와 무리들에게 가르치신 삶의 방식과 형태를 단순하고 소박한 삶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실생활에 적용하고 실천하려 할 것입니다. 물질만능의 현대 사회에 예수의 단순한 삶 공동체는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빵 이상의 그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갈 때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음을 삶으로 증거하려 합니다. 우리는 이곳에서의 수도생활을 통해 새로운 신학의 정립에도 정진하려 합니다. 대자연의 품속에서, 깊은 시골에서 이루어지는 삶은 우리에게 신학을 대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줍니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주류적 신학의 흐름은 도시중심의 “예루살렘 신학”이 아니었을까 돌아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삶을 통해 우리는 시골 중심의 “갈릴리 신학”의 정립 필요성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자끄 엘륄이 「머리 둘 곳 없던 예수」에서 제기하였던 바, 도시와 도시에 관한 신학의 주류적 관점이 시골과 시골에 대한 관점에서의 탐구를 통해 대치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물질만능의 이 시대가 역설적으로 갈구하는 신학적 갈망일지도 모릅니다.

라파마을 생태자연농장은 예수의 단순한 삶 공동체의 물적 기반이 될 것입니다. 야마기시 양계를 기초로 하는 자연양계 방식으로 유정란을 생산하여 예수 공동체의 자립을 모색할 것입니다. 농업 혹은 축산을 통한 공동체 자립의 문제는 기독교 공동체를 지향했던 수많은 선배들, 함석헌, 원경선 선생으로부터 대천덕 신부, 김진홍 목사 등의 앞선 세대 선배들이 채 이루지 못했던 꿈이었습니다. 왜 기독교 공동체의 경제적 자립이 그렇게 어려운가를 생각해보면 경제활동이 자본주의의 경쟁과 이윤추구가 아닌 무소유와 재물통용의 경제원리를 기초로 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실 자본주의 경제의 막강함과 시장의 포용력은 가히 절대적입니다. 만일 예수 공동체를 꿈꾸는 멤버들이 그 저 단순히 먹고 살려고만 한다면 세상에 나가 막노동만 해도 먹고 살 수는 있습니다. 그것이 자본주의 경제와 시장이 지니고 있는 막강함입니다. 그러나 무소유와 청빈한 삶, 재물 통용의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모여 경제적 자립을 이루는 길은 여간 어려운 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 이내에 경제적 자립을 이루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으며,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는”(행 4:32-33) 초대교회공동체의 모습을 지금, 여기에서 재현하려 합니다. 그리하여 이 산골짜기에서 물신주의에 물든 세상을 향해 산 위에서 비추는 청량의 빛이 되려 합니다.

4. 나가며

“새 술을 새 부대에”(마 9:17)

이 말씀은 새로운 시대를 지향하는 라파 커뮤니티에 합당한 말씀입니다. 대도시 대전에서 중독치유사역에만 전념하던 우리들이 이 곳 옥천 깊은 시골로 들어와 살며 부딪친 도전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음이 긴 세월이 지난 후 더 크게 체감되고 있습니다. 중독치유 “사역”을 감당하는 것과 “예수 공동체”를 이루며 “생업”을 모색하는 일을 동시에 병행하는 것은 새로운 고난과 어려움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나 옥천 이주 후 8년에 걸친 수고와 분투를 통해 이제 우리는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그 순간을 맞고 있다 할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 넓은 길이요, 꽃가마 타고 가는 길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공동체로의 주님의 부르심은 “와서 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자”는 부르심이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공동체를 위하여 우리 육체에 채우는 과정”(골 1:24)이며 저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과정 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면 할수록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빌1:29)는 바울의 고백을 아멘으로 받게 됩니다. 그러나 바울이 고난의 길을 걸으면서 그렇게 기뻐할 수 있었음은 역설적으로 그가 고난의 길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우리는 그 깊은 기쁨을 잘 알지 못하며 누리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마도 긴 시간이 지난 후에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서 고난이 우리의 유익이었으며, 우리의 기쁨이었다고 고백할 날이 있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제가 이 사역에 지쳐 힘들어 하고 있던 2007년 즈음에 한공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공협은 제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고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나아가야 할 길에 등불이 되었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 감사와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길, 함께라면 능히 갈 수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저를 땅 끝으로 부르셔서 라파공동체를 창립케 하셨고, 이제 새로운 예수 공동체를 세워 나가고 계십니다. 옥천으로 이주하면서 공동체 앞 정원에 느티나무를 사다 심었습니다. 이 공동체가 500년을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저 바라기는 저와 지금 시기의 형제 자매들이 500년을 지속할 예수 공동체의 영적, 정신적, 물적 토대를 놓는데 초석을 놓을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이 곳에 뼈를 묻기까지 예수 공동체로 부름받은 형제 자매들이 저마다의 믿음을 지키고 땅 끝에서의 은혜를 노래 부르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공동체로 세워져 가기를 또한 소원합니다.              - 끝 -   

(이 글은 한국공동체교회협의회 계간지 봄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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