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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성경공부-기쁨

  • 한나애비
  • 2019-11-11 19:4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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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쁨

1>기쁨의 사전적 의미: ‘즐거운 마음이나 느낌’ , ‘안녕, 성공, 행운 또는 자신이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게 될 가능성에 의해 솟아오르는 감정’

*기쁨을 정의한 병렬적 히브리어: 싸마흐(형통하다, 자부심이 충만하다, 기분이 아주 고조되다) < 길(돌아다니다,흥분하다,떨다) < 알라츠(격렬하게 기뻐하다)로또?

* 기뻐하는 행동은 인격적인 존재가 자기가 기대하거나 소원하던 일이 일어나거나 성취될 때 자연스럽게 방출되는 행위이다. 사람의 마음 속 기대가 충족되어 자기 존엄을 확증해줄 때 일어나는 인격적(정신적-심리적) 반응이다.

2>기쁨은 하나님의 특성 :기쁨의 감정은 자기 성찰적이고 자기 평가 적인 하나님의 인격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기쁨은 기획하고(창조하고) 사유하며 의지를 발동함으로 자신의 뜻을 구체화시켜가는 인격적인 존재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기쁨은 인격적이면서도 영적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성품에서 비롯되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만족감의 충일이 창조로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의 인격성 중 가장 안심이 되는 부분은 하나님의 자기만족적 자존감(결핍의 상대 개념)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 사역에 자부심을 표현하시고 극한 만족을 피력하신다. 당신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에 대해 기뻐하신다. 인간의 기쁨은 이 하나님의 기쁨에 동참하는 기쁨일 때 가장 순결한 기쁨이 된다.

3> 구약을 통해 본 기쁨

*구원의 기쁨: 사9:1~4: 이스라엘은 야훼의 구원을 경험하고 하나님 앞에서 기뻐했다.

*예배와 찬양의 기쁨: 레22:33~40 1.사회적 결속 증진 ,축제적 여흥 , 하나님의 메시지 선포가 선포되는 장엄한 긴장은 사람들이 일상을 초탈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노동의 독성을 제거-생산성을 높이려는 어떠한 영리추구 활동을 배제하여 하나님 앞에서 유유하게 쉬면서 안식이 노동보다 더 존귀한 생산성을 창조한다는 믿음을 확인하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임과 이스라엘 공동체의 한 구성원임을 자각하는 기쁨,

*하나님 공의로 인한 기쁨 :시97편-하나님의 통치로 정의의 회복-우상숭배의 허탄함을 폭로

*말씀을 깨달으며 영적 감수성을 회복하는 기쁨: 시51:8 –뼈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내세울 수 있는 자아 ,자신감 ,의지 등을 상징한다. 다윗왕은 밧세바 사건으로 치명상을 입었다. 왕의 권위와 위엄을 완전히 잃었다. 그는 자신이 이전에 누리던 모든 자존감과 자긍심이 산산조각 나는 상황에서 ,즉 뼈가 꺾이는 상황에서 자신의 영적정화와 성숙을 간구하는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4> 신약을 통해 본 기쁨

성경에서 사랑과는 달리(고전13:4~7) 기쁨이란 무엇인가 라고 개념을 정의하지는 않는다. 기쁨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기쁨이 좋다는 것을 아는, 당위적이라 그렇다. 다만 신약 속에서 기쁨의 종류에는 무엇들이 있는지 구별할 수는 있다.

* 부정적 의미의 기쁨/악인의 기쁨/세속적 기쁨; 눅12;19 /눅16:19 /행7:41/ 계11:10

*하나님께로부터 온 기쁨: 예수탄생 이야기, 마2:10 “그 별을 보고서 그들은 큰 기쁨으로 매우 기뻐했다‘/눅2:10”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했다’

예수는 큰 기쁨이다. 이스라엘 아니 온 인류에게 가장 큰 기쁨이다. 예수가 구세주라면 구원은 “기쁨”이라는 특별한 정서로 특징된다.

*눅6;23-예수의 제자가 됨으로써 박해와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슬퍼하지 않고 기뻐할 수 있다. 기쁨은 옳은 길을 가기 때문에 고난을 끗끗이 이기는 승리의 상징이다.

*하나님의 기뻐하심-“잃어버린 영혼의 구원/ 눅15:7 / 습3:17

5>기쁨의 대상이 올바른 기쁨의 성격을 좌우 한다: 눅10: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충분히 기뻐할 만한 일이다. 사람을 괴롭히던 귀신들이 제자들의 예수 이름 언급에 놀라 물러가는 것을 보았으니 그 기쁨은 당연하다. 더구나 주의 일을 한 것이다. 주의 일의 결실로 기뻐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들의 기쁨에 약간의 격려를 한 후 뜻밖의 제동을 거신다. “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한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느니라” 귀신들을 제어할 힘을 보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권세와 지배력에 도취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추구할 기쁨이 아니다. 진정한 기쁨의 본질은 구원이며 하나님의 인정과 기억이다. 그러니 기쁨의

감정을 갖게 되었다고 다 기뻐할 일만은 아니다. 기쁨의 원인이 중요한 것이다.

6>기쁨을 선택한 사람-바울

빌1:15~18- 바울의 명성을 시기한 일단의 믿는 자들이 바울의 투옥을 기회삼아 자신들의 명성을 높이려는 이기적 야망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한다 .일순 바울은 마음의 평정을 잃었고 여러 가지 열악한 사정으로 이제 그만 죽어 하나님께로 가고 싶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바울은 기도와 묵상 중 자신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깨닫는다. 그 이유는 바로 어쨌든 그리스도가 전파된다는 사실이다. 세상 사람에게는 기분이 좋게 되는 외적조건이 있을 때 몸과 마음이 반응하면서 생겨나는 정서가 기쁨이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동기나 명분은 차치하고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비록 자신의 외적조건은 괴롭고 고난 가운데 있을지라도 자신의 의지와 정서를 기쁨으로 방향을 돌릴 수 있어야하고 이는 그리스도인의 의무이기도하다. 예수님이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권면을 하는 이유는 기뻐하지 못하면 ,기뻐하지 않으면 우리는 지는 것이다. 괴롭게 사는 것은 지는 것이다. 사탄이 우리를 아무리 힘든 환경 속으로 몰아넣어도 기쁨을 잃지 않아야하는 것이고 이것이 곧 사탄에게 승리하는 길이다.

7> 기독교 희락(喜樂)주의: 하나님은 극락(極樂)의 하나님이다.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수도사는 엄숙하게 살아야 한다? 웃음은 영성수련에 방해가 된다?”

진정한 쾌락, 즉 인간의 영혼을 채워 주면서 동시에 인간을 최고의 도덕적 존재로 변화시켜주는 유일한 쾌락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이다. 하나님이 세상만물을 창조하신 목적도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고 기뻐하시기 위함이다. 구속 사역의 목적도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긍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이럴 권리와 능력이 있는 절대주권자이시다.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살 때 쾌감을 느낀다. 사람은 그렇게 지움 받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사람이 행복을 갈망하고 추구하는 것을 보편적인 선으로 본다. 죄로 여기지는 않는다. 문제는 인간이 참된 쾌락이 아니라 육신의 욕망을 채우는 쾌락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죄의 쾌락에 대해서 금욕주의로 대항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더 좋은 만족을 주심으로 죄를 이기게 하신다. 하나님 안에 있는 즐거움에 비하면 이 세상이 주는 기쁨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탐욕, 곧 우상 숭배를 버릴 수 있다. 더 큰 기쁨, 영원한 기쁨을 추구할 때 유혹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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