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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성경공부-자유

  • 하나애비
  • 2019-11-18 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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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유

1> 사전적 의미 혹은 일반적 개념 : 자유는‘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상태’를 일컫는다. 이런 자유 개념은 적어도 두 가지를 포함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나는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는 것이 없는 상태, 곧 외부적인 구속이나 간섭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무엇인가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인간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을 염두 해 둔다면 , 가장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자유는 단순히 아무런 제약이 없이 ‘무엇이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되기 어렵다.

 

2> 자유로워지고 ,더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는 것은 인간됨의 본질이다. 인간은 창조로부터 자유를 위해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인간은 본능적으로 예속을 싫어하고 자유를 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은 자유가 소유에 달려있다고 본다. 인간은 더 많이 가지면,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구비하거나 원하는 일들을 할 수 있으면 더 자유로워진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자유를 소유하기 위해 밖의 환경까지도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소유돼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더 자유로워지기 위해 정치제도나 문화도 변혁시키려 한다.

 

3> 구약에서의 자유: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써 갖는 자유처럼 어느 정도 제약된 차원에서의 자유를 뜻한다. 주변 사람들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의 자유행사 또는 적극적으로 타인의 유익과 행복을 배려하는 자유의 실천이야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자유개념이요, 구약성서가 강조하는 자유개념이다. 구약에는 약 4가지의 자유개념이 있다, 첫째는 레위기25:8~25에 나오는 희년제도이다. 50년마다 땅을 원주인에게 돌려주고, 집을 돌려주고 노예(얽매인 사람)를 해방시켜주는 것이다. 이 희년제도가 남 왕국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 때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들은 후) 실행될 뻔 했었는데 기득권층의 반발로 수포로 돌아갔고 결국 남 왕국은 멸망했다. 둘째 개념은 안식년에 노예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동족인 히브리인이 6년 동안 노예생활을 했다면 7년째에는 그를 놓아주어 자유케 하는 것이다. 그 외 억눌린 자를 위한 정의로운 심판,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 그들의 배고품을 해결해주는 것도 자유의 개념으로 정의한다.

4> 자유의 역설:제약된 차원의 자유/선악과와 자유

자유의 역설이란 현존-현실에 주어진 제한적 상황을 받아들일 때에만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명제이다. 예를 들어 상대방과 말로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하고 싶다면 내가 언어법칙들의 제한을 받아들일 때에만 가능하다, 만약 그 언어규칙이나 문법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나만의 언어-문법을 사용한다면 더 큰 명제인 상대방과의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닮은 아담과 하와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셨다. 그들은 에덴동산의 그 어떤 열매도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완전한 자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인정하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누려질 수 있는 자유였다. 마치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하고자 한다면 언어규칙이나 문법을 지켜야하는, 그 제한적 상황을 받아들일 때만이 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선악과는 최초의 인류가 누린 자유에 한계를 정한 것이 아니라 인류가 누릴 자유의 참된 성격을 규정한 것이다. 선악과 자체에 그 어떤 ‘신비한 능력’이 있어서 하나님이 금지한 것도 아니요 ,인간이 그 금지된 열매를 먹을 자유가 없었던 것 도 아니다. 선악과는 인간에게 자신의 피조물성(하나님께 순종해야하는 존재)을 상기시킴으로써 그들이 누리는 자유가 창조주가 부여한 제한 안에서 누려짐을 기억하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5>신약성경이 말하는 자유

요8:32 /자유에 이르는 첫걸음은 ‘자유롭다 ’는 착각으로부터의 깨어남이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많은 사상가들은 이런 환상 혹은 환각에 대해 경고해왔다. 복음을 ‘진리’로 선포하는 신약성경도 마찬가지이다. 요8장에서 자신을 ‘믿은’유대인들에게 그의 말씀이 그들 속에 거할 때 비로소 그들이 예수의 참제자이며 ,그때 그들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고’ 그 깨달은 그 진리가 ‘그들을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종의 신분이 아니라며 불쾌한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혈통적으로만 아브라함의 자손이지 행실은 아브라함과 같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진리이신 예수를 배척함으로써 하나님의 참 자녀로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죄의 종노릇할 뿐이었다.

 

6>애초부터 인간은 자기 삶의 주인이 아니다. 아담의 경우에서 보듯이 ,피조물로서의 정체성을 거부한 결과 ‘내 마음대로’의 자유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죽음의 저주에 놓였다. 복음이 말하는 해방과 자유는 물고기가 물을 벗어날 수 있다는 환각적 속삭임이 아니라 물 없이 죽어가는 물고기를 다시 물속으로 되돌리는 움직임이다. 복음의 자유란 죄 된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및 그 욕망을 타고 노는 헛된 가치들로부터의 자유다. 헛된 삶으로부터의 해방이며, 새로운 섬김에로 들어감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창조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그래서 자유의 삶은 하나님을 섬기는 새로운 종속의 형태를 띤다.

7>출애굽과 자유

출애굽은 참된 자유가 무엇인지 시사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의 학정에 신음할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조상들과의 약속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애굽에서 구출하고 해방시키신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자유가 주어졌지만 그들은 광야에서 온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다시 애굽에서의 노예생활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자유란 옛 습관을 철저히 버려야만 가능한 것이다

자유를 방종과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혹은 선호選好를 자유와 혼동하기도한다.이것은 인간 개인을 긍극적 주권자로 보는 비기독교적 세계관에 근거하는 것이다. 이 세계관에 따르면 인간의 최고가치는 ‘자기가 되는 것’이다. 스스로 내린 결정은 모두 정당화된다. 이런 세계관을 가진 사람은 ‘자유의 역설’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을 죽음(긍극적인 속박의 상태) 으로 몰아가는 행위라도 자기 자신의 자유로운 결정이라면 가치있다고 주장한다.

 

8>그러나 성경은 자유를 절대적인 가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자유는 구원 받은 즉 새 생명을 얻은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구원은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 되는 상태’가 아니라 선한 주인인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상태 이며 언제나 하나님과의 관계안에서 만 자유가 누려질 수 있다. 또 성경에서의 자유는 율법을 어기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행동할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발견되는 적극적인 것이다.

죄를 이기는 자가, 선을 행하는 자가 그리고 자기 자신보다 이웃을 더 사랑하는 자가 참자유자라고 가르친다. 이런 출애굽의 자유는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에서 긍극적으로 성취됐다. 하나님이 애굽 신들을 물리치고 그의 백성들을 해방시키셨듯이 그리스도는 사탄의 권세를 이기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자유를 주셨다.

그리스도인 들은 예수님이 이룩한 그 자유를 누리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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